서론

4. 문법의 한계와 보이지 않는 혀

zephyr 2009. 8. 21. 11:45

 

“문법자체가 언어 심층의 규칙을 표현하지 못한다.”

 (The grammar itself does not express the deep-seated

  regularities of the language.  - Noam Chomsky - )


사람들이 의사를 소통할 때 서로 주고 받는 말이나 글의 의미는 단어의

뜻이나 어법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I had a book stolen."은 영어를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라면

“나는 책 한 권을 도난당했다.”로 쉽게 이해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은 아니다.

약간의 상황(situational context)을 부가하여 보자.


A: I had a book stolen from his library by a professional thief

    whom I hired to do the job.

    ( 나는 전문 도둑을 고용하여 그의 서재에서 책 한 권을 훔쳐오도록 시켰다.)


B: I almost had a book stolen, but they caught me leaving the library

    with it.

    (나는 책 한 권을 훔치는데 거의 성공할 뻔 했는데 책을 가지고 도서관을

    나오다가 사람들에게 잡혔다.)


C: I had a book stolen from my car when I stupidly left the window open.

    (바보같이 차의 창문을 열어놓는 바람에 나는 책 한 권을 도난당했다.)


“I had a book stolen."은 단어의 배열에서 보면 과거분사(stolen)가 목적보어로

사용됨으로서 목적어인 “book”의 처지가 수동관계(훔쳐지는/도난당하는)에 있는

점은 세 개의 예문이 모두 동일하지만,

주어인 “나”의 입장에서는 A, B, C 에서 보듯이 그 의미가 모두 각각이다.

문장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에는 그 문장이 갖고 있는 어법이외에 또 다른 요소가

있을 수 있는 것을 보여 주는 예라 하겠다.

어법이외의 상황적 요인(situational factor)은 모든 언어가 갖고 있는 속성이다.   

따라서 문법의 기술(description)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보이는 문법"이 있는가하면 "보이지 않는 문법," 보이지 않는 언어감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우리말에서도 빈자리를 가리키며 “여기 자리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 “자리”는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게 되는데

이것은 관용적인 표현이라고 하기보다는 언어감각의 표현에 가깝다.

현실의 논리는 “그 자리에 앉을 사람”이지만 빈자리를 보면서 느끼는

관심의 대상은 미지의 어떤 사람보다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그 “자리”이다.

어법논리의 표현이 아니고 심리의 표현이며 언어감각의 표현인 것이다. 


 

다음은 J. K. Rowling의 Harry Porter and the Goblet of Fire (page 146)에

나오는 글이다.

 

"Thanks for having us to stay, Mrs Weasley," said Hermione,

as they climbed on board, closed the door and leant out the window

to talk to her."

"저희들 (집에서 지내도록) 초대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위즈리 아주머니."

   기차에 올라 타고 문이닫히자 허미온이 창문으로 고개를 내 밀고 말했다."]

 

J. K Rowling이 영어의 문법[have + 목적어 + 원형 부정사]을 몰라서

to부정사 사용한 것은 전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부정사의 의미를 또박또박 표현하고자 할 때의 느낌은 원형부정사보다 

to부정사가 더 어울린다고 보는 것이다. 

문법을 지나치게 따져 Rowling이 어법에 맞지 않는 문장을 썼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리석다. 

어법이란 "십중팔구 그러하다"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그러하다"는 것이 아니다.

이것이 영문법을 보는 시각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 예문에서 전치사구의 사용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A: " When are we going to have the next meeting?"

      ( 언제 다음 모임을 가질까요?)

B: "On Tuesday will be fine."

      (화요일이 좋겠네요.)


“On Tuesday”가 주어 역할로 쓰였으니 전치사구는 명사로도 사용된다고

해야 될까? 

“전치사구는 수식어 역할을 한다.”는 규칙은 틀린 것인가?

“On Tuesday”가 주어로 사용되는 것은 언어감각의 표현일 뿐 틀린 것이

아니다.

“전치사구는 수식어 역할을 한다.”라는 어법이 10중 8,9가 그렇다는 것을 

일반화한 것이라면, 전치사구가 명사로 사용되는 것은 10중 1,2의 어법이라

할 것이다.  

문장의 논리는 “화요일에 만나는 것(The meeting on Tuesday”이지만,

“만나는 것”은 정해진 사실이고 관심의 대상은 “언제?  화요일에..”이다.

      

    “화요일에가 좋겠네요.(On Tuesday will be fine.)” 


언어의 감각은 만국이 공통인 셈이다.

논리는 “화요일에 만나는 것”이지만 억양, 눈빛, 표정, 몸짓은 물론이고

언어소통에 관련된 모든 것을 주관하여 생각과 느낌을 자유자재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무의식적이고 직관적인 언어능력이 논리나 어법에 우선하여

“화요일에”를 택한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말에서는 “에”를 뺀  “화요일이 좋겠네요.”도

훌륭하게 통한다.

필자는 이와 같이 의사소통과 관련된 언어감각을 "보이지 않는 혀

(invisible tongue)"라 부르고 싶다.

Adam Smith의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자유경쟁시장을

주재하는 무형의 존재라면, 의사소통을 주재하는 무형의 언어감각은

"보이지 않는 혀"라 하여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손과 혀가 물리적인 존재이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영어 "혀(tongue)"의

경우는 언어(language)의 뜻이기도 하고 입안에 있어 잘 보이지도 않는

점에서 표현하고자하는 의미에 더 부합된다는 생각도 한다.

구태여 보이지 않는 혀를 말하는 것은 문법자체보다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터득되는 언어감각의 존재, 보이지 않는 문법의 중요성을

강조할 따름이다.  

 

"어법의 지식은 언어능력의 태반(placenta)이 된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은 어법을 익히며 실제의 영어를 듣고,

말해 보고, 읽기를 꾸준히 하여 의사소통의 능력(linguistic competence /

communicative competence), 보이지 않는 혀를 형성하는 것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