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가지 亡兆
2012.06.18
인도의 성자 간디(Mahandas kawamchand Gandhi 1869~1948)는 나라가 망할 때 나타나는 조짐으로 일곱 가지 사회악을 꼽았습니다. △ 원칙 없는 정치 △ 노동 없는 부 △ 양심 없는 쾌락 △ 인격 없는 교육 △ 도덕 없는 상업 △ 인간성 없는 과학 △ 희생 없는 종교입니다. 짜릿하게 공감이 가는 잠언입니다.
간디는 18세에 런던에 유학해 법률을 배웠고, 귀국하여 변호사가 된 뒤 1893년부터 22년 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거주하는 7만 인도인의 인권투쟁에 전념했습니다. 남아공 정부의 아시아인 등록법ㆍ인두세 등 인종차별법에 반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끈 끝에 인도인에 대한 차별법을 모두 폐기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진리 구현을 위한 실천을 근간으로 한 간디의 사탸그라하(satyagraha: 인종차별과 압박에 대한 투쟁)와 브라마차르야(bramacarya: 자기실현을 위한 인격 도야와 수양) 정신은 인도 독립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1915년 귀국한 그는 영국의 강압적 식민지 통치에 저항하여 납세 거부ㆍ취업 거부ㆍ상품 불매운동을 이끌었습니다. 물레를 잣는 수방(手紡)운동을 전개하고, 농촌구제와 불가촉천민의 지위 향상에도 진력하였습니다.
간디가 평생 일관한 비폭력ㆍ무저항주의의 평화사상은 인도민족에게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그를 인류역사에 우뚝 서게 했습니다. 인도의 문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 1861~1941)가 1922년 53세의 간디를 마하트마(Mahatma; 위대한 영혼)라고 칭송한 헌시를 지어준 것은 그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의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간디가 지적한 사회악들이 고스란히 재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옹(翁)이 일찍이 한국의 미래를 내다본 듯해 아연해집니다.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하고 나라 살 길을 찾는 데 매진해도 모자랄 판에, 국론은 분열되고 물가는 치솟고 날씨마저 가물어 국민의 가슴은 조여들기만 합니다.
정치는 어떠한가요? 자고나면 쌈박질인 정치판은 온통 막말ㆍ험담ㆍ악담의 공판장과 흡사합니다. 행여 더 나은 사람이 나올 거라고 기대한(번번이 속으면서도) 19대 국회는 선거 전부터 끝난 뒤까지 해방정국과 흡사한 난맥상을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낭분시돌(狼奔豕突 : 승냥이가 길길이 날뛰고 멧돼지가 저돌적으로 돌진함)의 형국입니다.
‘친북ㆍ종북 세력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며 야권의 후보 선정 비리에 대한 반사이익으로 4ㆍ11총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한 여당은 집안싸움에 휘말려 허덕거리고 있습니다.
야권은 명찰 달고 완장 찬 주사(主思) 좌파들이 끌고가는 듯합니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대표는 “패악무도한 정권을 끝장내야 한다”고 날을 세웠습니다.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의 한 간부는 실형이 선고되자 재판장에게 “민족반역자” “개새끼 너 죽을 줄 알아. 미국놈의 개야” 라고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나라를 맡길 수 없는 좌파ㆍ비리 정치인, 변절자(탈북자)를 보듬는 패악무도한 친미 정권, 그 어느 쪽도 국정을 책임질 세력이 아니라면 굳이 대통령과 국회의원ㆍ자치단체장을 돈들여 뽑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요. 말로만 국민을 위한다며 누가 진보인지 퇴보인지, 민주인지 참주인지, 무엇이 자유인지 평등인지, 대의(代議)인지 대의(大疑)인지 모를 공방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새누리당이 국회의원에게도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하고, 전직 의원의 노후 지원금 제도를 개편하는 등 특권을 폐지하는 쇄신 방안을 추진한다고 합니다. 일하지 않고 한 달에 5억 원이 넘는 세금을 축내는 것은 당연히 지탄받을 사안이지만, 정치적 쇼 아니면 구두선으로 끝나지 않을지 두고 볼 일입니다.
국회가 그러니 돈에 눈이 어두운 모리배들이야 오죽할까요. 저축은행 사건이 그렇습니다. 1백억 원 대 빚을 진 신용불량자에서 대주주가 된 미래저축은행 김찬경 회장은 충남 아산 민속마을의 70억 원짜리 고택 9채를 사 타운을 만들어 놓고 술판을 벌였다고 합니다. 또 인근에 2,000억 원이 넘는 골프장과 온천리조트도 소유하고 있습니다. 서민의 피와 땀이 묻은 돈을 맡아 관리는 뒷전으로 미루고 자신의 치부에 전력을 다한 것입니다.
땀 흘리지 않고 부자가 되는 방법으로는 조상 잘 만나는 게 최상인 것 같습니다. 재벌닷컴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어린이 억 대 주식부자가 100명을 넘었다고 합니다. 허용수 GS 전무의 장남(11)은 453억, 차남(8)이 163억 어치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친인척인 한 살짜리 젖먹이 어린이도 9억 원 대의 주식을 증여받은 부자가 됐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땀을 흘리지 않고 호의호식하는 자를 불한당(不汗黨)이라 일컬었습니다.
초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직을 세습하고, 프리미엄을 붙여 교회를 팔고 사는 일은 오래 되었지만, 득도에 정진해야 할 승려들이 도박판ㆍ술판을 벌였다니 기가 막힙니다. 희생은커녕 불교계는 재산싸움과 분파싸움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승가(僧家)의 법도가 이판사판(理判事判)이 되어 가는 게 아닌지….
‘욕쟁이 스님’ 춘성(春城 1891~1977) 스님의 일화가 생각나 쓴웃음이 나옵니다. 전찻간에서 “예수를 믿어야 천당에 갑니다. 죽은 부처를 믿지 말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시오” 하고 외치는 사람에게 스님은 “부활이 뭔데?”라고 물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지요. 부처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소. 그러니 스님도 예수님을 믿으시오.”
춘성스님은 열변을 토하는 전도사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게 부활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전도사는 활기를 띠며 “바로 그겁니다”라며 스님을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스님은 일갈했습니다. “그럼 너는 내 X을 믿어라. 내 X은 매일 아침 부활한다. 예수가 내 X하고 같으니 너는 내 X을 믿거라.”
종교계가 사랑과 희생, 회개와 영성수련을 외면하면 필부들의 가정과 학교는 어떻게 될까요. 일부 교사들은 학부모들의 돈 봉투 액수가 적힌 학생 명단을 새 학기 다른 담임선생에게 건넨다고 합니다. 명문 외고 2학년생이 교무실 컴퓨터에 저장된 기말고사 시험 문제를 훔쳐 본 뒤 전교 1등으로 뛰어오르는가 하면, 초등학교 5학년짜리가 왕따 당해 학교가기 싫다고 교실에 불을 질렀다고 합니다. 어디서 인격과 인성을 닦아야 할까요.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타고르는 1928년 한국을 위해 시 한 편을 남겼습니다. 바로 ‘동방의 등촉(燈燭)’입니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코리아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머리는 높이 쳐들린 곳
지식은 자유스럽고
좁다란 담벽으로 세계가 조각조각 갈라지지 않는 곳
진실의 깊은 속에서 말씀이 솟아나는 곳
끊임없는 노력이 완성을 향해 팔을 벌리는 곳
지성의 맑은 흐름이
굳어진 습관의 모래벌판에 길 잃지 않는 곳
무한히 퍼져 나가는 생각과 행동으로
우리들의 마음이 인도되는 곳.
그러한 자유의 천당으로
나의 마음의 조국 코리아여 깨어나소서
<1929년 4월 2일 동아일보. 朱耀翰 옮김. *당시 동아일보에 전재된 타고르의 시는 앞의 4줄 뿐이고 '마음엔 두려움이 없고' 이후 부분은 그가 노벨상을 수상한 시집 기탄잘리(Gitanjali)의 35번째 시입니다. 동아세계백과대사전에는 위의 시 전부가 실린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그해 일본에 온 타고르에게 동아일보 기자가 한국 방문을 요청하자 그에 응하지 못함을 미안하게 여겨 대신 기고한 작품입니다.
‘동방의 빛’이 되리라는 그의 예단과 염원을 저버리고 우리는 언제까지 온갖 해악을 저지르며 집안싸움과
자해(自害)행위만 하고 있을 것인지….
김홍묵
경북고,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동아일보 기자, 대구방송 이사로 24년간 언론계종사. ㈜청구상무,
서울시 사회복지협의회 사무총장, ㈜화진 전무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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