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오후 '趙甲濟의 현대사 강좌'(문화일보 홀)에 나온 독일계 한국인 李參(Bernhard Quandt, 1954년 독일生)씨는 완벽한 한국어로 흥미진진하게 두 시간의 강연을 이끌었다.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나라의 답답함'이란 주제였다.
31년째 한국에 산다는 그는 자신이 "독일에서보다 한국에서 생활한 기간이 더 길어졌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그의 한국論은 한국인이 보지 못한 점을 지적하였기에 청중들의 박수와 호응을 많이 받았다.
1. 한국은 원래부터 多元主義 문화를 가진 나라다.
한국은 샤머니즘, 불교, 유교, 기독교를 차례로 받아들여 한국화하고 꽃을 피우고, 평화공존하는 세계에서 유일한 나라라는 것이다.
2. 철학과 과학성이 생활속에 깔려 있다.
그는 한국의 건축, 한글, 음식 등에는 철학과 과학성이 깔려 있다고 하였다. 한국의 강점은 철학자와 학자들이 나라를 1천년간 다스린 점이다.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한국은 철학 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3.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한국만큼 다양하고 친근한 자연을 가진 나라는 없습니다. 애국가의 가사는 온통 자연에 대한 사랑입니다. 동해물, 백두산, 남산, 소나무, 하늘, 바람 등등. 한국처럼 드라이브 할 때 5분마다 풍경이 바뀌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연과 조화하길 원하는 사람들이 사는 한국은 환경大國이 될 수 있습니다."
4.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진돗개 연구가이기도 한 그는 진돗개가 한국인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했다. 한국인과 비슷하기에 도태되지 않고 애호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순종적이고 잘 훈련된 셰퍼드가 독일인의 애호를 받는 것도 마찬가지 이치이다.
"한 집에서 여러 마리의 개를 키우면 한번은 꼭 싸웁니다. 그리하여 서열이 정해지고, 이 서열에 따라 질서가 잡혀 더 싸우지 않습니다. 진돗개를 여러 마리 키우는 집에서는 싸움이 끊이질 않아요. 싸워서 진 개가 이긴 개에게 승복하지 않고 계속 도전합니다. 보스 기질이 강하여 모든 개가 우두머리가 되겠다고 그러는 거예요.
제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진돗개를 조사하였는데 세 집에서는 서로 싸우지 않았습니다. 이 세 집이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진돗개를 멧돼지 사냥에 이용하는 거예요. 멧돼지를 진돗개가 1 대 1로 상대하여선 다 죽습니다. 그러니 세 마리가 공동작전을 펴서 멧돼지를 피로하게 한 다음 물어서 죽입니다.
강한 敵을 거꾸러뜨리기 위하여 협력하다가 보니 세 마리가 친해져서 사이 좋게 지냅니다. 한국인들도 공동의 敵, 공동의 목표가 있을 때는 단결합니다. 한강의 기적이 그런 경우이지요."
5. 너무 혈연, 지연, 학연, 당파중심 사고에 억매인다.
그렇다. 어디 한강의 기적뿐인가. 한국인들은 평소에는 내 가족, 내 친족, 내 동네, 내 동문, 내 파당 등등으로 갈라져서 제편만 옳고 잘났다며 지역싸움, 당파싸움을 일삼고... 불안한 장래에 대하여도 각자가 다 다르게 개인적으로 혼자의 방식과 비책으로 대비하고 고민한다.
그러나 우리 역사를 한번 뒤돌아 보자. 나라에 매우 큰 환란이 닥쳐올 때에는, 참 신기하게도 국민 대다수가 순식간에 한 가족처럼 일치된 공감대(共感帶 consensus)와 공동체의식을 형성하면서, 초당적으로 단결, 각자의 비책을 교환하며 너나없이 국난타개에 앞장서 몸바쳐 왔던 것이다.
한강의 기적 정도가 아니라 임진왜란이 그랬고 6.25전쟁이 그랬다.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하고 6년동안이나 삼천리강산을 들쑤셔 대던 20만 대군(지금같으면 2백만정도의 대군)의 왜구가 종국엔 거의 다 죽고 패퇴하였는데...이것은 이순신장군 혼자서 이룩한 승전이 아니라 각처에서 온 백성이 의병, 승병, 학병, 심지어는 의기 논개와 부녀자들의 치마부대가 결사항전에 나섰기 때문이 아니었나?
제2차 세계대전의 용장으로서 6.25전선에 투입된 미국의 한 장성(밴플리트 장군)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고 전한다.
"내가 오랜동안 크고 작은 전쟁터를 다 다녀 보았는데, 한국군 같은 독종(?)은 보지 못했어요. 38선에서 밀리기 시작해서 한강, 수원, 대전, 낙동강등 전선마다 후퇴를 거듭하는 동안 한국군 패잔병들은,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것 같은데, 항상 저희들 끼리 새 부대를 편성하여 일선에 다시 보내달라 무기를 달라! 고 절규하는거야... 당시엔 탱크도 없어서, 나가면 죽는게 뻔한데... 유럽 전선에서 보면, 어느 나라에서든 패잔병은 도망쳐 초야에 흐터지면 그만이었지."
6. 한국의 개인주의는 미흡함이 있으나 끈기가 있다.
李參씨는, 독일에서도 16세기 초 마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이 일어나기 전에는 위대한 성취나 인물이 적었다고 한다.
종교개혁에 의하여 인간이 교회의 압제로부터 해방되고 개인의 소중함이 인정되면서 위대한 국민, 위대한 국가가 탄생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한국의 개인주의는 아직 부족하다고 그는 지적하였다. 아직도 획일적인 생각이 힘 쓰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들은 골프 연습을 너무 열심히 하여 갈비뼈에 금이 가는 일을 예사로 생각하는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경우이다"고 하였다. 무엇을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한국인의 성격이 잘 보여주듯이 한국인의 에너지는 세계적이란 것이다.
그는 독일인과 한국인이 다른 듯하지만 비슷한 점도 있다고 하였다. 철학자 헤겔이 지적한대로 독일인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情이 깊다, 애국심이 강하다, 자신감이 넘친다. 그는 "처음 만났는데 한 시간도 되지 않아 남편감, 신부감을 소개해주겠다고 하는 한국인, 어디 아프다고 하면 모두 약사가 된 것처럼 각자 좋은 약을 추천하는 한국인, 국민 다수가 자신을 대통령감으로 생각하는 나라"를 자신감의 예로 들었다.
이런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교육제도가 문제라고 李參씨는 비판하였다. 너무 "우리끼리 경쟁"에만 빠져 있다는 것이다. 동양예의지국이 아니라 동양무례지국처럼 된 것도 교육의 실패이다.
李參씨는 한국인들을 단결시킬 수 있는 멧돼지 같은 사냥감, 즉 국가적 목표와 비전, 또는 大義를 국가지도부가 만들어내어야 무한한 잠재력을 활용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