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도 말하는 사람들 [막시 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막시밀리안 콜베 신부는 1930년 4월에 36세의 젊은 나이에 모국 폴란드에서 두명의 수도사와 함께 시베리아 열차를 타고 일본 나가사끼까지 와서 성모의 기사 수도원을 히꼬야마에 세웁니다. 5-6년 선교 사역을 하는 동안 그는 많은 유품을 남기고 고국인 폴란드로 귀국하여 수도원장이 됩니다.
그러나 2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찌스에 비협력적이란 이유로 지상의 지옥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됩니다.
죄수번호 16670으로 불리던 콜베 신부는 다른 수감자와 꼭 같이 강제노역과 하루 빵 한조각과 멀건 수프 한쪽박의 굶주림과 구타에 시달리면서도 동료들을 위로 하며 죽어가는자들을 위해 기도와 고해성사를 베풀며 지냅니다.
두 달쯤 지났을까요. 감방에 있던 수감자 한 사람이 탈출을 합니다.1명이 탈출 하면 남은 자들 가운데서 10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굶겨 죽이는 아사형이 선고 됩니다.
수용소장이 고른 열명중 한 사람이 "아이들과 아내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는 죽을수 없다" 고 울부짖습니다. 이때 지명되지 않았던 콜베신부가 나와 "난 신부요 내가 이사람 대신 아사형을 받겠소 난 아내와 자식이 없습니다." 콜베는 아사실로 끌려 가서도 다른 사람들과 기도와 묵상을 하다 2주간 동안에 죽지않아 독약 주사로 숨집니다.
아우스비츠 생존 작가인 프리모 레비는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수용소를 "생존을 위한 투쟁을 한시도 놓을수 없는곳" 이라 증언 합니다. 시체와 거리낌없이 한 침대를 쓰고 옆 사람이 가진 빵 조각을 뺏기 위해 그 사람이 죽기를 기다리는곳이라고, 그래야 며칠 또는 몇달을 더 버틸수 있는 곳이라고, . 콜베 신부는 그런 곳에서 다른 사람을 걱정 하다가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일본 유수의 작가 엔도 슈사쿠는 그의 저서 삶을 사랑 하는법에서, "벗을 위해 목숨울 버리는 사랑보다 더 큰사랑은 없다"는 (요15:13) 을 떠 올리며 자신의 하루의 양식을 병든 동료의 머리맡에 놓고 강제 노역장으로 나가는 사람, 아내나 자식 때문에 죽을 수 없다는 사람 대신 목숨을 바친 콜베를 생각하면 우리가 아무리 궁핍하고 생활이 어렵다 한들 아우슈비츠에 비할 수 있겠는가! 인생에 고통이 있고 슬픔이 있기에 사람들 사이에 사랑이 존재 하는것 이라고 설파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어떤짓을 하고도 합리화되고 변명이 되는 아우슈비츠! 그러나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의 비참한 환경 탓으로 돌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실천할수있는 자유는 예수의 뒤를 따르는자만이 누릴수 있는 자유 입니다. 자신의 악한 행위의 책임을 사회나 정치나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서 찾고자 하는 마음은 증오로 무엇을 얻으려는 것이라는 것을, 사랑만이 구원함이라는 것을, 그때 콜베 신부 대신 살아남은 가이오니체크씨는 92세때인 1982년 콜베신부 시성식때 증언 하였답니다.
죽었어도 말 하는 사람 콜베는 극악 무도한 나찌와 목숨을 걸고 싸워 이긴 예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무엇때문에 누구를 미워 합니까? 아우슈비츠의 상황보다 더 악한 상황일까요? 우리는 아벨의 후예,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 그분의 제자인것을 명심 해야 합니다.
~^* 이성희 전도사 님 옮겨온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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