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북한 다루는 법 [ 2013-07-13, 10:18 ] 이정훈(월간자유) |
박근혜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흥미롭게 변하고 있어 주목된다. 가장 큰 변화는 개성공단 철수일 것이다. 김대중 정부가 만들고 노무현 정부가 애지중지 해온 까닭에 보수인 이명박 정부는 북한의 돈줄인 줄 알면서 그대로 유지해준 개성공단을, 북한의 위협이 거듭되자 박근혜 정부는 철수시켜 버렸다. 소도 비빌 언덕이 있어야 일어난다는데, 비빌 언덕을 치워버렸으니 북한은 허공을 향해 삿대질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사실 개성공단은 우리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가장 큰 두려움은 그곳에 근무하는 많은 우리 근로자가 인질로 잡히는 사태였다. 사방이 북한군으로 둘러싸인 지역에 공단을 만들어놓고 우리 국민을 투입한 것은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통일과 민족 화합을 위해 경제인들을 투입했다는 논리가 있었지만, 경제인들을 사지로 보내는 것은 국가가 할 일이 아니다.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을 기대한 경제 행위였다고 해도 지나친 면이 있었다. 세계 최강인 미군이라고 해도 개성공단에 있던 우리 근로자가 인질로 잡히면 구할 재주가 없다. 인질을 구하려고 군대를 투입하면 북한은 대응 범위를 확대해, 휴전이 전쟁으로 변하는 사태가 빚어질 수도 있다. 인질을 구하러 간 우리 군은 침략을 했다는 누명을 뒤집어 쓸 수도 있다. 그것을 피하기 위해 가만히 있으면 우리는 북한을 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는 거둘 수 있다. 유엔을 비롯한 세계는 남북이 합의로 만든 공단 지역의 한국 민간인들을 인질로 잡은 북한을 격렬히 비난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우리 국민들은 왜 인질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느냐며 정부를 질타할 것이다. 그로 인한 남남(南南)갈등이 자심(滋甚)해지면 우리만 고통을 받는다. 북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인질극은 대표적인 테러로 꼽힌다. 그러한 테러가 예상되는 데도 우리는 10여년간 개성공단을 유지했으니 상당히 무모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다음으로 주목되는 것은 남북 회담에 연연해하지 않는 모습이다. DJ-노무현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이명박 정부조차도 남북회담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김대중-노무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하였고,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제의하며 싱가포르에서 양측 실무자가 대좌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대화는 항상 우리가 제의하고 우리가 원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줄 듯 말 듯, 줄 때는 톡 쏘고 주는 전술을 구사했다. 김대중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1차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한국이 국익 상승을 기대하며 한일월드컵 개최에 총력을 기울이던 2002년 6월 29일 북한은 2차 연평해전을 일으켜 우리의 참수리 고속정을 격침시켰다. 그날 우리는 터키와 한일 월드컵 3·4위 결정전을 하기로 돼 있었는데, 북한은 지독한 재를 뿌린 것이다. 그리고도 모자랐는지 고농축 우라늄 사태를 일으켰다. 북한은 미국과 맺은 제네바 합의에 따라 중단하기로 한 것은 재처리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만이었다며, HEU라고 하는 고농축 우라늄 사태를 야기했다. 그로 인해 2002년 미국은 제네바 합의 파기를 밝히고 미-북관계를 단절에 가까운 것으로 몰고 갔다. 2차 북핵위기가 일어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은 보란 듯이 1차 핵실험을 했다. 미국에 제네바 합의를 깼으니 그들도 자기 길을 가겠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를 갈구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을 만나준 김정일은 “대통령이 그러한 것도 못합니까”라며 타박을 했다. 한국이 회담을 갈구한다는 것을 알고 튕기면서 실리를 챙기는 영악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싱가포르에서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실무회담을 하던 뒤끝에 천안함 피침 사건을 일으켰다. 한국이 조금이라도 대화에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면 이를 기화로 번개같이 후려쳐 얼을 빼놓고 필요하면 만나줌으로써 많은 것을 챙기는 것이 북한의 전형적인 전술인 것이다. 그런데 그냥 만나주지 않는다. 우리가 장관을 보내면 그들은 사회단체의 국장을 보내는 것으로 우위에 서서 만나 주는 모습을 보였다. 북한은 우리가 통일부장관을 대표로 내세울 때 북한은 정체가 불명한 내각 참사를 대표로 보냈다(2001년 9월 5차 장관급 회담, 홍순영 통일부장관 대 김령성 내각 참사). 참사라는 직책은 필요에 따라 임시로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국장급도 임명할 수 있고 과장급도 임명할 수가 있다. 북한 내각에는 부장이라고 하는 장관이 있는데 북한은 우리를 무시하기 위해 참사라는 타이틀로 대표를 내보내는 것이다. 한국이 간청하니 만나준다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비유해서 말하면 봉건시대 중국이 조선으로부터 조공을 받는 것 같은 모습을 연출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의 장관급 회담에서는 북한의 사회단체인 아시아태평양위원회(아태)의 국장으로 있는 권호웅을 내각 참사로 임시 지명해 내보냈다. 대한민국의 장관이 북한 사회단체의 장(長)도 아닌 중간 간부를 만나 회담을 하게 한 것이다. 북한의 장난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리는 장관급 회담이 아닌데도 이 회담을 꼬박꼬박 ‘장관급’ 회담으로 불렀지만 북한은 그냥 ‘상급(上級)’회담으로 불렀다. 이는 대한민국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북한의 영악한 술책이다. 대한민국은 북한과 정전협정도 맺지 않았으니 상대로 인정할 수 없다. 그러나 너희가 대화를 원하고 지원을 해주겠다고 하니 우리 사람을 보낸다. 그런데 자꾸 장관급으로 하자며 회담의 격을 높이자고 하니 ‘상급’으로 해준다는 것이 북한의 복심이었던 것이다. 얻어먹는 주제에 북한은 존대할 것은 최대한 존대해놓고 받아먹은 것이다. 당시 한국에는 북한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사람이 많았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자존심 하나로 버티는 민족이다. 미국과 일본 같은 초강대국을 상대해도 꽂꽂 하려고 하는 근성을 가졌다. 그런데 6·25전쟁을 일으킨 북한한테는 쉽게 고개를 숙이니 이들은 땅을 치며 분노했다. 그러나 당시 정부가 꿈쩍을 하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었다. 세계가 인정한 G-10 수준의 대한민국이 북한으로부터는 저렇게 무시돼도 되는 것인가. 약간의 변화는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 후 금강산 관광을 중단시킨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났다. 그때 북한은 조선로동당의 통일전선부장과 한국 장관급 인사와의 밀담을 허용했다. 그러나 밀담이 아닌 정식회담에서 만나는 것은 응하지 않았다. 조선로동당에서 대남 사업은 통일전선부장이 맞고 있으니 그의 상대는 우리 쪽에서는 통일부장관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통일부-통전부 대표가 만나는 통-통회담이 거론됐으나 현실화되지는 않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는 북한의 태도는 오래 되었다.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1991년의 남북고위급 회담이다. 그때 남북에서는 총리가 대표로 나와 이 합의에 서명했다. 그렇다면 이 회담을 총리급으로 부를 수 있는데, 북한은 고위급 회담을 고집했다. 그때는 우리도 북한은 인정하지 않았기에 고위급 회담이라는데 대해 큰 불만을 품지 않았다. 명칭이야 어찌되었든 북한에서 총리가 나온 것에 주목했다. 그런데 DJ-노무현 정권에서는 사회단체의 국장급이 내각 참사로 타이틀을 바꿔달고 우리는 장관급 저들은 상급이라고 하는 회담에 나왔으니 대한민국의 국격은 처참히 유린당한 것이다. 이러한 왜곡이 박근혜 정부에서 바로 잡아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6월 11일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회담 대표의 격을 정하는 회의에서 북한의 예의 자세를 고집하는 것을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북한에서 통전부장이 나설 것을 요구하며 통일부장관을 대표로 하겠다고 했으나 북한은 거절했다. 때문에 통일부차관을 대표로 보낸다고 하자 북한은 회담을 무산시켜 버렸다. 우리는 이 회담을 북한이 상급회담으로 부르는 것은 수용하지만 북한 대표는 통전부장이 나오라고 했는데 북한은 이를 거부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과거 정부에서는 볼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반복되어야 북한은 조금이라도 고개를 숙이게 된다. 건방진 행동을 줄이고 국제적인 예절에 맞는 행동을 하는 쪽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통일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북한의 책임있는 당국자와 회담을 해나가야 한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김정일을 가장 책임 있는 자로만 보고, 그를 만나기 위해 사소한 절차와 의례는 생략하는 성급함을 보였다. 때문에 북한은 우리를 흔들 수가 있었다.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는 우리의 조급증이 우리를 넘어지게 한 것이다. 3차 핵실험 직후 우리 사회가 김정은을 비난하자 북한은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고 위협했다. 그로 인해 겁을 먹는 사람들은 북한을 비난하지 말라는 평화애걸세력으로 변모했고 그 틈을 이용해 다시 종북세력이 활개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에서 있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공식 선언했다. 북한은 새로 만든 헌법 전문(前文)에 핵보유국이라고 해놓을 정도로 핵보유를 공인받기 위해 애쓰고 있는데 미국은 물론이고 중국까지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고 한 것이다. 북한 최고 존엄은 지독한 모욕을 당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지도부는 중국에 대해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는 비난을 쏟아내지 못한다. 한국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욕을 하면서. 이것이 북한의 속심이다. 비벼야 하는 언덕인 중국에는 한없이 약한 것이다. 한국도 과거에는 비벼볼 수 있는 언덕이었는데, 당시 한국은 북한에 저자세로 일관했다. 그러니 북한은 때리고 무시하고 뺏어먹는 전술을 반복했다. 그로 인해 우리 사회는 심각한 남남 갈등을 겪었다. 이제부터는 남북관계를 정상화해 당국자 회담을 당국자 회담 답게 해야 한다. 그리고 북한에 대해 왜 중국에 대해서는 최고 존엄을 모독했다는 비판을 하지 않느냐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북한에 대한 우리의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진다. 우리에 대한 북한의 건방짐도 줄어들 수 있다. 이렇게 해나갈 때 통일의 길이 조금씩 열린다. 앞으로 북한이 애걸해서 우리가 응해주는 식으로 남북회담을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평화통일로 가는 시작이다. 이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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