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TRACTIONS

영연방과 UK, GB의 차이점

zephyr 2014. 9. 25. 20:45

 

 

 


Ⅰ. 개념의 규모: 영국연방 > UK > GB

英國聯邦[Commonwealth of Nations / 통칭 The Commonwealth]

영국을 비롯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인도 등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던 53개의 국가로 구성된 국제기구다. 대부분 국가들이 과거 영국 영토였지만 지금은 독립국이며, 회원국들은 민주주의ㆍ인권ㆍ법질서 등을 공동의 가치로 추구한다.

영국 국왕은 영연방의 수장으로 인정되고 있으며, 영연방 국가들 다수는 영국 국왕이 국가 원수로, 총독(Governor-General)이 여왕의 대표자로 통치한다. 총독은 영국 정부와는 독립적으로 해당 국가 각료들의 조언에 따라 국왕이 임명한다.

한편 영국 국왕을 비롯해 영연방 국가 정상들은 2년에 한 번씩 영연방정상회의(CHOGM: Commonwealth Heads of Government Meeting)를 갖고 있다. 회원국 중 모잠비크는 영국의 식민지가 아니었으나(포르투갈의 식민지) 영연방에 가입했으며, 홍콩은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영국 연방에 가입하지는 않았다.

英國[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Northern Ireland, 통칭 United Kingdom]

 

 

영국 국기(Union Flag)  영국을 구성하는 네 개의 지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깃발 중 웨일스를 제외한 3개 지역(잉글랜드, 스코틀랜드, 북아일랜드)의 깃발 문양을 조합하여 만든 국기이다.

지금의 영국을 뜻하는 말로, 유럽 대륙 서북쪽에 있는 섬나라로, 그레이트브리튼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과 아일랜드섬 북쪽의 북(北)아일랜드로 이루어진다. 1922년 아일랜드 자유국이 성립될 때 북아일랜드가 영국의 일부로 남음으로써 현재의 연합왕국이 되었다.

大英帝國[Great Britain]

Great Britain, UK에서 북아일랜드를 제외한 그레이트 브리튼섬(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을 지칭하는 말. 여기서 Great이란 ‘위대한’ 이란 뜻이 아니라 ‘큰’ 이란 뜻이다.


Ⅱ.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갈등 역사와 원인

영국 연방으로 묶여 있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같은 민족이라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엄연히 뿌리가 다르다. 잉글랜드는 앵글로색슨족이고, 스코틀랜드는 켈트족이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만 게일어라는 토속어를 갖고 있다.

1603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 없이 사망하자 스코틀랜드 스튜어트 왕조 메리 1세의 아들 제임스 6세가 영국 국왕 제임스 1세로 즉위하면서 두 나라는 사실상 연합의 길을 걷게 됐고, 1707년 스코틀랜드는 결국 영국에 완전히 합병됐다. 그리고 1999년 토니 블레어 전 총리가 일부 자치권을 허용하면서 스코틀랜드도 자치 정부와 의회를 열게 됐다.

하지만 민족적 자부심이 강한 스코틀랜드는 항상 분리독립을 향한 열망을 버리지 않았고, 2010년 유럽 재정위기 여파로 중앙정부가 스코틀랜드 자치정부에도 강력한 긴축재정을 요구하자 분리독립 여론이 거세졌다.

영국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스코틀랜드의 자신감은 풍부한 자원에서 나온다. 스코틀랜드 앞바다에 있는 북해 유전과 천연가스전은 영국 전체 원유 및 천연가스 자원의 95%를 차지한다. 영국이 스코틀랜드의 분리독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명화 Brave Heart의 주요 줄거리

13세기 말엽,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 왕가는 서로 대립하고 있었다. 스코틀랜드 왕이 후계자 없이 죽자, 잉글랜드는 왕권을 요구하며 스코틀랜드에 포악한 정치의 그림자를 드리우기 시작한다. 폭정으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잇달아 죽음을 당하게 되고, 윌리엄 월레스(멜 깁슨 분)는 폭정을 피하여 고향으로 멀리 보내어져 양육된다. 그가 성장하여 고향에 돌아왔을 때 스코틀랜드는 여전히 잉글랜드의 전제 군주 롱생크(패트릭 맥구한 분)의 핍박과 탄압 시달리고 있었다.

이때 윌리엄 월레스에게는 그에게 운명적인 사랑의 여인인 머론(캐서린 맥코맥 분)을 만나게 되고 그와 결혼하나, 잉글랜드의 폭정에 머론은 잔인하게 처형된다. 월레스는 머론의 죽음을 복수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모여드는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모아 용맹과 투지로 무장한 저항군을 이끄는 지도자가 된다. 잉글랜드는 월등한 군사력을 앞세워 스코틀랜드를 침략해오고 역사적인 스털링 전투에서 월레스의 군대는 잉글랜드에 큰 승리를 거둔다. 월레스 군대의 용맹함에 당황한 롱섕크는 휴전을 제의하게 되고, 롱섕크는 왕자 에드워드(피터 핸리 분)의 무기력함에 공주 이사벨(소피 마르소 분)을 화해의 사절로 보내게 된다. 비록 정략적인 만남이었지만 이사벨은 월레스의 애국심과 용맹함에 매혹되고, 그녀는 잉글랜드의 침공 사실을 월레스에게 알려주게 된다.

폴커크 전투에서 두 왕조는 다시 치열한 전투를 벌이게 된다. 하지만 스코틀랜드는 잉글랜드에 치명적인 패배를 당하게 되고, 목숨만 건진 월레스는 다시 군대를 정비하려하나 롱섕크의 계략에 결국 잉글랜드에 포로로 잡히게 된다. 월레스는 런던으로 보내지고, 공개처형의 운명을 맞는다. 이사벨 공주 조차도 월레스를 구할 수 없었으며, 위대한 영웅은 죽어가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국의 자유와 평화를 외치며 의연하게 죽음을 맞는다. 월레스의 죽음에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윌리암 월레스의 숭고하고 의로운 정신을 마음 속에 새기며 베노번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퇴시킨다.


England 對 France 축구경기서 Scotland인이 France를 응원하는 이유

England, Scotland 1707년 두 국가는 합쳐진다. 하지만 합병 후에도 Scotland는 자치법과 독자적 사법제도를 유지했으며, 수천 년간 쌓여온 민족감정도 여전히 남아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England팀을 응원하지 않고 상대팀을 응원한다고 한다.그 뿌리 깊은 원인에는 같은 핏줄의 두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메리 스튜어트 이야기가 연관되어 있다.

절대 왕권적인 위치에 올라섰고 국민들의 사랑도 독차지했으며, 제해권마저 손아귀에 쥠으로써 명실공히 최고의 권력자로 군림하게 된 엘리자베스였지만 그녀도 내면적으로는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왕실 혈통 문제인데, 이미 헨리 8세의 정치에서 언급되었듯이 엘리자베스의 모친인 앤 왕비가 헨리 8세의 이혼 요청에도 굴하지 않고 죽음을 택한 것은 엘리자베스가 헨리의 적자로 남게 하려던 희생적인 행동이었으나 그 이후 헨리는 에드워드 왕자를 보면서 사실 엘리자베스에 대한 적자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잉글랜드 국민들에 의해 그녀는 여왕으로 올라서게 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만약 누군가가 튜더 집안의 혈통상 적자를 따진다면 사실 왕실에 더 가까운 사람은 그녀와 친척 간인 메리 스튜어트 여왕이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것이 두 여인 사이에 주어진 운명이었다.

당시 스코틀랜드는 로버트 1세가 왕국을 안정시킨 후 그와 후손들인 스튜어트 가문이 통치하고 있었으며, 전통적으로 프랑스와 동맹을 맺고 로마 교황청과도 밀접한 관계에 있었다. 제임스 5세의 사후 메리 스튜어트(1561~1587년)는 어머니의 고향인 프랑스에서 양육되어 프랑수와 2세와 결혼하였으나 그가 1년 만에 병사하자 프랑스의 왕비의 위치에서 스코틀랜드의 여왕으로 옮기게 되었다.

한편, 스코틀랜드는 존 녹스(John Knox, 1505~1572년)란 인물이 장로교도들을 중심으로 교회 국가를 만들고 있었다. 존 녹스는 가톨릭 사제였다가 국교도로 개종했고, 메리 튜더 시절에 크랜머를 구출하려다 세인트 앤드루 성에 유패된 적도 있으며, 이후 제네바에 거주하며 정통 칼뱅파를 신봉한 후 스코틀랜드로 건너와 장로파 교회를 개척한 사람이다.

이러한 상황하에 있던 스코틀랜드에 메리 스튜어트가 막상 여왕으로 부임하게 되자 그녀가 가톨릭 신자이며 프랑스 왕후였음을 들어서 계속 그녀의 왕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에 견디다 못한 메리 스튜어트는 스코틀랜드를 떠나려 했다. 그녀는 프랑스로 갈지 잉글랜드로 갈지 고민하다가 마침 프랑스는 정부가 바뀌는 시점이라 포기하고, 그의 친척인 엘리자베스가 있는 잉글랜드를 택하게 되었다. 잉글랜드에 온 그녀는 반(反)엘리자베스 추종파들이 혈통 문제를 부추기는 바람에 이에 말려들어, 결국 엘리자베스에 대항하는 반란에 연루되었다.

그 결과 1587년에 참수형을 당하는 비운의 여인이 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는 자신의 왕권을 지키려는 의지가 메리 스튜어트의 참수로 이어지게 되었음에도 끝까지 이와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1603년 죽는 순간까지도 정통적인 왕위 계승자가 될 수 있는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를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았던 것만 보더라도 그녀의 내면에는 메리 스튜어트의 존재를 누구보다 의식하였음을 알 수 있다.

[검색 및 자료제공: 박철원 www.cwpark.co.kr | 편집: 심심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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