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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理)인가, 기(氣)인가, 덕(德)인가?

zephyr 2012. 11. 1. 17:44

이(理)인가, 기(氣)인가, 덕(德)인가?

  아직도 역사책을 읽으면서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라는 화두에 매달려 논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습 왕조시대에는 왕조를 뒤엎는 자가 나오면 그가 영웅이었다. 곧 왕이 되었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간다. 100년도 좋고 500년도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왕조시대가 아니다. 선거에 의해 지도자는 선출된다. 선거 앞에서 발가벗겨 지다 보면 신비해야 할 영웅의 면모는 어느덧 나약한 보통사람으로 전락해 버리고, 전설 속에 살아있어야 할 빛나는 업적은 비도덕적인 추태로 인해 변명 속에 빛을 잃어버리고 만다. 하물며 그렇게 선출되었다 해도 그의 임기는 4~5년.., 10년을 넘기기란 선진 민주국가에서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보면 현대사회에서는, 영웅도, 그가 만드는 시대도 탄생되기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꿈꾸는 만인이 평등한 민주사회에서는 우리가 꿈꾸는 불세출의 영웅은 더더욱 나타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영웅, 적어도 영웅적 지도자를 갈구하고 있다. 국가를 안전하게 지켜주고, 경제를 쑥쑥 성장시키면서 아무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는 복지사회, 정의가 살아 움직이는 공정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어 줄 지도자를 관념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나를 위해 봉사할 지도자라는 이름의 일꾼을 바라고 있을 뿐, 신뢰하고, 순종하며, 인내하면서 그의 재량을 인정하는 것에는 대단히 인색하곤 한다. 지도자라 하면서도 어떤 특권도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용기, 결단력, 공정성, 직감력, 미래의 비전과 예측능력, 추진력, 조정력, 따스한 인간미, 문화적 감각, 그리고 깨끗한 청렴성 등의 자질을 요구한다. 현대 속에 살면서 전설 속의 영웅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시대, 선거는 민심이라는 이름의 창조주이다. 우리의 창조주는 너무도 변화무쌍하다. 창조주가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상황, 인물, 바람.. 창조주의 섭리는 하도 오묘해서 결과를 보고 나서야 그의 뜻을 겨우 헤아릴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창조주의 선택에도 주관은 있다. 어쨌든 민심은 영웅을 그리고 있고, 영웅의 바탕은 그의 자질로 그려진다.

  선거에 있어, 자질에 의하든 상황 또는 바람에 의하든 한 지도자의 당락은 그 사람의 운명이지만, 어떤 지도자가 당선되었는가는 그 사회의 운명이다. 상황이나 바람은 언제든지 변하지만 지도자의 자질은 임기 내내 우리사회에 큰 영향을 끼치며 미래를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자질

동서고금의 수많은 이론이 있고, 지금도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나는 마치 3원색과 같이 결국 다음의 세 가지 원소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다.

  ◆첫째는 이(理)다.
  이념이다. 미래에 대한 생각, 비전, 철학 등으로 대표되는 지도자의 논리다. 분명한 정치철학, 신념체계, 정연한 사고력을 가지고 있는지 창조주는 주시한다.

  ◆두 번째 자질은 기(氣)다.
  힘이다. 끄는 무엇이다. 카리스마, 리더십, 매력, 강한 추진력, 정치력 등의 수사가 이에 해당하는 기의 성질들이다. 대중적 인기도 이의 범주에 속한다. 지도자의 기에 흡인되면 민중은 열광한다.

  ◆셋째는 덕(德)이다.
  너그러움이다. 고매한 인품, 청렴성, 도덕성, 포용력 등이다. 민심은 인정에 약한 속성이 있다.

  이(理)와 기(氣)와 덕(德).  가장 바람직하기로는 이 세 요소의 자질을 적절히 갖춘 지도자일 것이다. 자기 논리가 분명하고, 이를 강하게 추진하며 아울러 따스한 인간애를 소유한 지도자. 하지만, 지도자에 따라 요소 간의 농도의 차이는 있게 마련이다. 자기와 의견을 달리할 때,

   기(氣)가 센 지도자에게는 "감히 반대할 수가 없다".
   덕(德)이 많은 지도자에게는 "차마 반대할 수가 없다".
   이(理)가 강한 지도자에게는 "어찌 반대할 수가 없다". 

  이 세 유형의 지도자는 일본에서 보다 극명하게 회자된다. 전국시대의 영웅 오다 노부나가와 토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새장의 새가 울지 않을 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울어라. 울지 않으면 울게 하겠다."라고 했고 오다 노부나가는 "울어라,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리겠다."고 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울어라,울지 않으면 울 때까지 기다리겠다."라고 했다.

  고대 중국에서 기(氣)보다는 이(理), 이(理)보다는 덕(德)을 베풀 것을 강조해왔던 것이 공자의 사상이었다. 항우(氣)와 유방(德), 조조(理)와 유비(德)를 생각해보면 이해가 간다.

이(理), 기(氣), 덕(德)의 지도자는 각기 통치 스타일이 다를 수 밖에 없다.

  이(理)의 지도자는, 논리가 정연하고 철학은 분명하지만, 추진력과 돌파력이 부족할 수 있는 단점이 있다. 똑똑한 것으론 사람을 매료시키기 어려운 법이다. 하지만 그의 철학은 임기가 끝나고도 지속되는 생명력이 있다. 분명한 이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인은 이런 지도자를 선호할 것이다.

  기(氣)의 지도자는, 결단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 폭풍과 같이 휘몰아치는 파워와 속도로, 그의 리더십은 위기시에 특히 요구된다. 그의 강한 카리스마는 수많은 추종자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임기가 끝나면 이념 없는 그의 통치 논리는 빛을 잃고 만다.

  덕(德)의 지도자는, 유능한 참모가 모여든다는 장점이 있다. 민주적인 리더십으로 원만한 국정을 운영하며 능력을 떠나 존경을 받는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 우유부단하고 야심찬 부하에게 농락당할 수 있는 치명점이 있다.

  이(理) 지도자, 기(氣)의 지도자, 덕(德)의 지도자. 그러한 정형적 유형의 지도자란 현실에서 분간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며, 더욱이 이(理) 기(氣) 덕(德) 의 덕목을 우열로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덕목들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발휘되는 장단점이 있다. 민심은 바로 그 사회의 시대 상황에 비추어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지도자의 자질을 선택할 것이다. 역대 대통령들이나 우리지역의 지도자들을 이러한 유형에 대입시켜 그들이 우리사회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살펴본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연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이론적으로는 이(理)와 기(氣)와, 덕(德)이 치우치지 않고 골고루 조화를 이룬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일 것이다. 합리적이면서도 활력 있는 사회, 인간미가 흐르면서 풍요로운 사회, 자유와 평등, 그리하여 사회구성원들이 행복지수가 높은 사회.. 우리의 목표는 그런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러한 사회를 위해서는 어떤 지도자를 필요로 할까? 어쩌면 균형과 조화를 위해 이(理)의 사회에서는 기(氣)의 지도자를, 기(氣)의 사회에서는 이(理)의 지도자를, 덕(德)의 사회에서는 이(理)와 기(氣)의 지도자를 추구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지는 않을까?

당신은 어떤 유형의 지도자인가?
우리는 어떤 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지도자를 길러내야 하는가?
이(理)인가, 기(氣)인가, 덕(德)인가? 

최민호 / 행정안전부 소청심사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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